판례 해설
계약을 체결할 때에는 계약의 당사자가 각자 원하는 조건을 제시하고, 최종 합의를 도출하는 과정을 거친다. 이때 각자의 조건이나 계약의 세부 내용 등이 맞지 않는 경우, 당사자 끼리의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아 계약이 체결되지 않게 된다. 물론 구두 계약도 계약으로서의 효력이 인정되나, 구두계약의 경우는 계약의 성립 여부뿐 아니라 구체적인 세부 내용을 입증하기 어렵다는 문제가 있다.
그렇기 때문에 계약 체결이 인정되려면 계약의 주요 부분에 대하여 당사자 간의 합치가 이루어져야 한다. 이를테면 공사 도급계약에 있어서는 공사의 내용 및 규모, 완성 시기, 공사대금의 액수 등이 중요한 내용에 해당하고, 계약 당시에 이 부분에 대하여 정확하게 확정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러나 그렇지 않았더라도 장래에 이를 확정할 수 있는 기준 또는 방법에 대한 합치가 인정된다면 계약이 성립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 사건에서 원심 법원은 계약의 세부 내용에 대한 합의뿐만 아니라 장래에 이를 특정할 수 있는 기준이나 방법에 대한 합의가 없는 것을 이유로 공사도급계약이 성립되지 않았다고 보았고, 이에 따라 공사대금 청구를 인정하지 않았다.
그러나 원고와 피고 사이에 공사 내용에 대한 협의가 있었고, 협의 내용에 따라 원고는 공사를 진행하였다. 또한 착공 전부터 원고가 피고에게 수차례 공사의 내용 및 공사대금 내역서를 제출하였으며, 공사 진행에 대하여 인지하고 있으면서도 피고는 3개월 동안이나 이에 대한 제재가 없었다. 이것을 근거로 하여 대법원은 원고와 피고 사이에 공사도급계약이 성립하였다고 판단하며 원심 판결에 대하여 파기환송하였다.
대법원의 판단이 타당하였으나, 대상 판결에서 2심 판단까지도 원고의 청구가 부정된 점을 보아, 구두 계약의 입증이 쉽지 않음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공사업자는 공사 진행 전에 공사대금을 비롯하여 주요 내용을 기재한 공사 계약서를 작성 하는 것이 큰 분쟁을 예방하는 일일 것이다.
법원 판단
수급인이 일의 완성을 약속하고 도급인이 그에 대하여 보수를 지급하기로 하는 명시적 또는 묵시적 의사표시를 한 경우에는 비록 보수의 액이 구체적으로 합의되지 않았어도 도급계약의 성립을 인정할 수 있다.
그리고 당사자가 계약을 체결하면서 일정한 사항에 관하여 장래의 합의를 유보한 경우, 당사자에게 계약에 구속되려는 의사가 있고 계약 내용을 나중에라도 구체적으로 특정할 수 있는 방법과 기준이 있다면 계약체결 경위, 당사자의 인식, 조리, 경험칙 등에 비추어 당사자의 의사를 탐구하여 계약 내용을 특정하여야 한다(대법원 2007. 2. 22. 선고 2004다70420, 70437 판결 참조).
원심은, 그 판시와 같은 사정을 들어 적어도 공사도급계약에 있어 가장 핵심적이고도 중요한 사항이라 할 수 있는 공사대금에 관하여 단순한 협의를 넘는 의사의 합치가 있었다고는 볼 수 없을 뿐만 아니라 공사대금을 장래 구체적으로 특정할 수 있는 기준과 방법에 관한 합의가 있었다고 볼 수도 없다고 하며 공사도급계약이 성립하였다고 볼 수 없다고 판단하였다.
그러나 원심의 이러한 판단은 이를 수긍하기 어렵다.
가. 원고(반소피고, 이하 원고라 한다)와 피고(반소원고, 이하 피고라 한다)가 공사대금의 구체적인 액수 또는 추후 정산을 위한 공사대금 산정방법을 기재한 공사도급계약서 등 문서를 작성한 사실이 없어 공사도급계약의 존재를 알 수 있는 객관적인 자료가 없는 것은 사실이다.
나. 그러나 원심판결 이유와 기록 및 적법하게 채택된 증거들에 의하면 다음과 같은 사실을 알 수 있다.
① 원고 대표이사 소외 1은 2010. 7. 14.경 피고에게 이 사건 토지를 매도한 후, 그 무렵부터 이 사건 토지에 펜션을 신축하려는 피고와 피고로부터 이 사건 토지의 벌목 공사, 부지조성 공사, 돌쌓기 및 배수로 설치 공사 등을 도급받는 것을 협의하였다.
② 원고는 2010. 9. 15.경부터 2010. 12. 8.경까지 위와 같이 협의한 공사 내역에다가 물탱크, 모래다짐, 굴착 및 되메우기 공사 등을 추가하여 공사를 완성하였다.
③ 피고는 원고의 공사 착공 사실을 알았는데도 약 3달에 걸친 기간 동안 이를 제지하지 않았고, 위 공사 진행 무렵 피고로부터 펜션 건축공사를 도급받은 소외 2는 자신이 원고가 수행한 이 사건 공사까지 도급받으려 하였으나 피고가 원고에게 이를 도급하였다고 진술하였다.
④ 소외 2가 수행한 위 건축공사는 원고가 수행한 이 사건 공사를 기초로 이루어진 것이다.
⑤ 원고는 공사 착공 전과 공사 완공 후 피고에게 공사 내용 및 공사대금을 산정한 내역서를 수 회 제출하였다.
다. 이러한 사실들과 함께 공사도급계약에 있어서는 반드시 구체적인 공사대금을 사전에 정해야 하는 것은 아니고 실제 지출한 비용에 거래관행에 따른 상당한 이윤을 포함한 금액을 사후에 공사대금으로 정할 수 있다는 점을 앞서 본 법리에 비추어 보면, 피고는 원고에게 원고가 이 사건 공사를 완성하고 이에 관한 공사대금은 사후에 실제 지출한 비용을 기초로 산정하여 지급하기로 하는 명시적 또는 묵시적 의사표시를 하였다고 보는 것이 경험칙에 맞는다고 할 것이다.
라. 그렇다면 그 판시와 같은 사정을 들어 이 사건 공사도급계약이 성립하지 않았다고 인정한 원심의 판단은 계약의 해석에 관한 법리를 오해하였거나 논리와 경험의 법칙에 반하여 자유심증주의의 한계를 벗어나 판단을 그르친 것이다.
그러므로 나머지 상고이유에 대한 판단을 생략한 채 원심판결 중 본소에 관한 부분을 파기하고, 이 부분 사건을 다시 심리·판단하게 하기 위하여 원심법원에 환송하기로 하여, 관여 대법관의 일치된 의견으로 주문과 같이 판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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