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판례 해설 ]
간혹 건설 관련 상당을 하다보면 상담자가 '자신이 아는 사람에게서 받은 감정서가 있으니 이를 증거로 사용해달라'고 하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법원 감정을 거치지 않은 사감정서가 재판 결과에 영향을 미치는 경우는 거의 없다.
물론 아주 예외적으로 소송 당사자가 직접 전문가에게 의뢰해서 받은 감정서가 증명력 있는 증거로 사용되는 경우가 있기는 하다. 그러나 이는 정말로 예외적인 경우에 불과하다.
일반적으로 법원에서 전문적인 의견이 필요한 경우에는 감정이라는 절차를 진행한다. 이처럼 법원에서 소송 당사자가 가져온 의견서보다 법원 감정 절차를 거치는 이유는, 원고나 피고 중 누구에게 치우치지 않은 공정한 사람이 객관적으로 사안을 판단하고 내린 결론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 문서를 작성한 사람의 공정성 뿐만 아니라 그 작성에 기초된 사실 역시 객관적이어야 법원은 이를 증명력 있는 증거로 인정한다.
이 사건에서는 원고가 소송 진행 중에 법원 감정을 거치지 않은 채 개인적으로 의뢰하여 받은 손해사정서를 증거로 제출하였는바, 원심 법원은 이를 증거로 채택하여 그에 따라 판결을 내렸지만 대법원은 그러한 원심 판단에 문제가 있음을 지적하며 파기하였다.
공정한 재판을 위해서는 제출된 증거 및 자료 역시 공정해야 하는 점을 고려할 때, 대법원의 판단은 지극히 타당하다.
[ 법원 판단 ]
가. 감정의견이 반드시 소송법상 감정인신문 등의 방법에 의하여 소송에 현출되지 않고 소송 외에서 전문적인 학식과 경험이 있는 자가 작성한 감정의견이 기재된 서면이 서증의 방법으로 제출된 경우라도 사실심법원이 이를 합리적이고 믿을 만하다고 인정하여 사실인정의 자료로 삼는 것을 위법하다고 할 수 없지만(대법원 1992.4.10.선고 91다44674판결 등 참조), 원래 감정은 법관의 지식과 경험을 보충하기 위하여 하는 증거방법으로서 학식과 경험이 있는 사람을 감정인으로 지정하여 선서를 하게 한 후에 이를 명하거나 또는 필요하다고 인정하는 경우에 공공기관ㆍ학교, 그 밖에 상당한 설비가 있는 단체 또는 외국의 공공기관 등 권위 있는 기관에 촉탁하여 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으므로(민사소송법 제334조, 제338조, 제341조 등 참조), 당사자가 서증으로 제출한 감정의견이 법원의 감정 또는 감정촉탁에 의하여 얻은 그것에 못지않게 공정하고 신뢰성 있는 전문가에 의하여 행하여진 것이 아니라고 의심할 사정이 있거나 그 의견이 법원의 합리적 의심을 제거할 수 있는 정도가 되지 아니하는 경우에는 이를 쉽게 채용하여서는 안 되고, 특히 소송이 진행되는 중이어서 법원에 대한 감정신청을 통한 감정이 가능함에도 그와 같은 절차에 의하지 아니한 채 일방이 임의로 의뢰하여 작성한 경우라면 더욱더 신중을 기하여야 할 것이다.
나. 원심은, 피고들은 원고에게 이 사건 물품의 멸실로 인한 손해배상책임이 있다고 판단한 다음, 그 손해배상액을 산정함에 있어서 원고가 제1심 소송 계속 중에 법원의 감정절차를 거치지 아니한 채 개인적으로 손해사정회사에 의뢰하여 작성한 다음 서증으로 제출한 손해사정서(갑 제10호증)를 그대로 채용하여 이 사건 물품의 멸실 당시의 가액을 288,372,066원으로 인정하였다.
다. 그러나 앞에서 본 법리에 비추어 볼 때 원심의 판단은 그대로 수긍하기 어렵다.
먼저, 위 손해사정서의 기재를 보면, 위 손해사정서를 작성한 손해사정사는 이 사건 물품 중 재고자산(동산), 즉 원고가 보유하고 있던 각종 모조장신품(액세서리 등)의 멸실로 인한 손해를 `원부자재의 매입금액에 가공, 조립비 및 각종 세금 등 일반관리비를 합산한 금액에서 이윤을 제외한 제조원가`로 산정한다고 하면서(기록 142쪽), 구체적인 평가기준으로 `품목별로 최초 제작 당시에 작성된 제조원가 산정서상의 가격에 한국은행에서 고시한 물가변동에 따른 물가지수를 반영하여 사고 당시의 평균 제조원가를 산출하였고, 거래처로부터 제출받은 매입ㆍ매출 확인서 및 시장조사를 통해 소비자 가격 대비 제조원가가 17.6%임을 확인 후 위 제조원가가 적정하다고 판단되어 최종 제조원가로 산정하였음`이라고 밝히고 있다.
그러나 우선 위 손해사정서 전체를 살펴보더라도, 위와 같은 가액 산정의 기초로 삼았다는 `최초 제작 당시에 작성된 제조원가 산정서`가 첨부되어 있지 아니하여 그것이 구체적으로 누가, 무엇을 근거로 어떻게 작성한 것인지 그 내용을 전혀 알 수가 없다.
그리고 위 손해사정사가 최초 제조원가의 적정성을 확인하기 위하여 거래처로부터 제출받았다는 매입ㆍ매출확인서(기록 219~233쪽)를 살펴보더라도, 위 각 매입ㆍ매출확인서는 원고가 위 모조장신품 등을 제작할 당시에 주고받은 세금계산서 등 거래증빙자료가 아니라 위 손해사정을 앞두고 거래관계가 있었다는 점을 확인하는 취지로 작성, 교부받은 것에 불과하여 그 신빙성에 의문이 들 뿐만 아니라, 그 기재 자체로도 구체적인 거래 시기가 표시되어 있지 않고 단가도 일정하지 않음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원심과 제1심이 적법하게 채택한 갑 제2호증의 기재와 남양주세무서장에 대한 사실조회 결과에 의하여 알 수 있는 바와 같이 원고는 1998.7.2.경부터 모조장신품 등을 제조하는 `□□실업`을 운영하였으나 2004.2.9.2003년 귀속분 부가가치세를 납부한 이후에는 부가가치세 납부실적이 전혀 없다가 2007.5.4.폐업신고까지 하였다는 것이므로, 위 모조장신품 등은 이 사건 화재일인 2007.7.3.을 기준으로 적어도 3~4년 정도 전에 제조된 것으로 추정할 수 있을 것인데, 위와 같이 거래 시기조차 기재되어 있지 않은 매입ㆍ매출확인서로 어떻게 최초 제작 당시의 제조원가의 적정성을 확인하였다는 것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한편, 위 손해사정서는 이 사건 물품 중 집기비품과 가재도구에 대해서는 재조달원가에 사용기간에 따른 감가수정을 하는 방법(복성식 평가법 또는 원가법)으로 가액을 평가하면서도 유독 위 재고자산(동산)에 대해서는 `최초 제조원가에 물가지수를 반영하는 방법`으로 그 가액을 산정하고 있다.
그러나 위 손해사정서의 재고자산에 대한 평가방법이 정당하기 위해서는 위 재고자산의 가액(교환가치)이 최초 제조 당시보다 이 사건 화재일 무렵에 상승하였을 것이라는 점이 전제되어야 할 것인데, 비록 위 재고자산이 실제로 사용되지는 않았다고 하더라도 시간의 경과에 따라 감가(減價)가 되지 않는다고 볼 수 없고, 더욱이 위 재고자산이 유행에 민감한 모조장신품 등이라는 점을 감안할 때 3~4년 전에 제조된 물품의 가액이 하락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물가상승률만큼 상승한다고 전제하는 것은 명백히 경험칙에 반한다고 할 것이다.
그럼에도 원심은 위와 같이 합리적인 근거가 없고 경험칙에 반하는 내용으로 작성된 손해사정서를 그대로 믿어 이 사건 물품의 멸실로 인한 손해액을 산정하고 말았으니, 원심판결에는 자유심증주의에 위배하여 경험칙에 어긋나는 사실을 인정하였거나 손해액 산정에 관한 법리를 오해하여 판결에 영향을 미친 위법이 있다고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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