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판례 해설 ]
공공기관의 운영에 관한 법률에 따라서 공기업이나 준정부기관은 공정한 경쟁 또는 적정한 계약의 이행을 해할 것이 명백하다고 판단되는 법인, 사람, 단체 등에 대해서 일정한 기간 동안 입찰 참가자격을 제한할 수 있다.
대상판결은 피고인 한국도로공사와 고속국도 공사에 대한 도급계약을 체결한 원고가 부도가 나 회생절차를 진행하게 되었고, 채무자회생법을 근거로 위 도급계약에 대해서 해지권을 행사하였다. 그러자 피고가 원고에 대해서 6개월동안 부정당업자를 이유로 입찰 제한 처분을 하였고, 이에 원고는 위 처분에 대해서 청구를 구하는 소송을 제기하였다.
이에 법원은 채무자회생법에서 관리인에게 계약 해제 및 해지 또는 이행을 선택할 수 있도록 한 이유는 회생회사 사업의 정리나 재건을 원활하게 함과 동시에 당사자 사이의 형평을 도모하는 것에 있다고 설시하면서, 관리인이 법원의 허가를 받는 등 채무자회생법에서 규정한 절차에 따라 해지권을 행사하였으며, 이 사건 원고 회사의 회생절차 개시신청이 이 사건 도급계약의 이행을 회피하려고 악용되었다고 볼만한 근거가 없으므로 피고 한국도로공사의 이 사건 처분은 공공기관법 제39조 제2항에서 정한 요건을 충족하지 못하였다고 보아 위법한 처분이라고 판단하였다.
[ 법원 판단 ]
이 사건 처분이 공공기관법의 규정에 적합한지 여부
먼저 위 인정사실에 의하면 피고는 원고에 대한 회생절차개시 후 이 사건 계약의 해지를 사유로 이 사건 처분을 한 것으로 볼 수 있고, 달리 위 회생절차개시 이전에 이미 이 사건 처분의 사유가 발생하였다는 점에 관한 주장과 입증은 없다.
그런데 앞서 본 바에 비추어 알 수 있는 다음과 같은 사정들을 종합하면, 관리인 가 이 사건 계약을 해지한 B 것을 두고 공공기관법 제39조 제2항이 정하고 있는 “공정한 경쟁이나 계약의 적정한 이행을 해칠 것이 명백”한 경우에 해당한다고 보기는 어렵고, 달리 이를 인정할 증거가 없다.
① 채무자회생법 제119조 제1항이 회생절차 개시 당시에 채무이행이 완료되지 아니한 쌍무계약에서 관리인에게 계약 해제ㆍ해지 또는 이행을 선택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한 것은 회생회사 사업의 정리ㆍ재건을 원활하게 함과 동시에 양 당사자 사이의 형평성을 도모하고자 마련한 것으로( 대법원 2000. 4. 11. 선고 99다60559 판결, 1998. 8. 28. 선고 98다3603 판결 등 참조), 그러한 채무자회생법의 입법 목적은 다른 법률을 적용ㆍ해석함에 있어서도 존중되어야 한다. 따라서 관리인이 법원의 허가 등 채무자회생법이 정한 요건과 절차에 맞추어 해지권을 행사하였고(피고는 이를 다투고 있지 않다), 회생절차개시신청이 오로지 이 사건 계약의 의무이행을 회피할 목적으로 악용되었다는 등의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이러한 사정을 인정할 증거는 없다), 공공기관법 제39조 제2항의 입찰참가자격제한처분의 요건에 해당하는지를 따짐에 있어서도 그 해지권 행사는 적법한 행위로 평가되어야 한다.
② 피고가 이 사건 처분의 근거로 삼은 국가계약법 시행령(2013. 6. 17. 대통령령 제24601호로 개정되기 전의 것, 이하 같다) 제76조 제1항 제6호는 “정당한 이유 없이 계약을 체결 또는 이행하지 아니한 자”라고 규정하고 있다. 그런데 회생절차에서 관리인에게 위와 같은 선택권이 있는 이상, 쌍무계약의 상대방은 관리인이 계약의 이행을 선택하거나 계약의 해지권이 포기된 것으로 간주되기까지는 임의로 변제를 하는 등 계약을 이행하거나 관리인에게 계약의 이행을 청구할 수 없고, 관리인이 채무를 이행하지 않더라도 그에게 책임 있는 사유로 채무불이행에 빠졌다고 할 수 없다. 따라서 회생절차개시부터 선택권 행사까지는 채무불이행의 문제가 생기지 않을 뿐만 아니라 관리인이 해지권을 행사한 후에는 계약의 효력이 상실된 이상 역시 채무불이행이 발생할 여지가 없다.
③ 이 사건 규칙 조항이 2013. 11. 18. 기획재정부령 제375호로 개정되면서 상위법인 공공기관법의 엄격한 규정 취지를 고려하여 입찰 참가자격을 제한할 수 있는 경우를 한정하여 규정함에 따라 이 사건 처분의 근거가 된 국가계약법 시행령 제76조 제1항 제6호를 비롯한 몇 개 규정들이 삭제되었는데, 이는 일반적인 채무불이행과 같은 사유만으로는 공공기관법 제39조 제2항의 처분 요건을 충족할 수 없다는 반성적 고려로 볼 수 있다.
④ 채무자회생법 제121조 제1항은 관리인이 쌍무계약을 해지한 경우 그 상대방이 손해배상에 관하여 회생채권자로서 그 권리를 행사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으나, 이는 회생절차에서 양 당사자 사이의 형평성을 도모하고자 하는 취지일 뿐 그 손해배상청구권을 회생회사 관리인의 귀책사유 있는 위법한 채무불이행으로 인한 당연한 효과로서 규정한 것으로 볼 수는 없다.
⑤ 회생회사의 관리인은 회생회사의 기관이거나 그 대표자가 아니라 회생회사와 그 채권자 및 주주로 구성되는 소위 이해관계인 단체의 관리자로서 일종의 공적 수탁자이므로( 대법원 1988. 10. 11. 선고 87다카1559 판결 등 참조), 관리인 B가 그러한 지위에서 법률상 요건과 절차에 맞추어 해지권을 행사한 것은 회생회사의 이익만이 아니라 피고를 비롯한 채권자의 이익도 함께 고려된 것으로 볼 수 있다.
⑥ 회생회사가 채무자회생법에 따라 공사를 계속 수행하지 않은 경우에 관하여 공사 미수행에 대한 정당한 사유가 있다고 본다면, 회생절차를 신청하지 않은 부실업체가 공사를 계속 수행하지 않은 경우와의 형평성이 문제된다는 지적이 있을 수 있으나, 회생회사 관리인의 위와 같은 선택권은 회생절차를 거친 데 따른 당연한 법률적 효과이고 회생절차를 거치지 않은 다른 업체와 같은 평면에서 형평성을 비교하는 것은 채무자회생법의 입법 취지를 도외시할 위험이 있다.
⑦ 결국 공공기관법의 관점에서도 관리인 B가 해지권을 행사하여 이 사건 계약의 이행을 포기한 것을 탓할 수는 없고, 다만 그로 인하여 장래 불특정 계약의 적정한 이행을 해칠 것이 예상되는지가 문제될 수 있다. 그러나 원고가 부도 발생으로 회생절차를 거치고 있었고 그 절차에서 관리인이 해지권을 행사했다는 점만으로는, 앞서 본 바와 같은 사정들 및 회생절차제도의 목적과 그에 따른 운영 원리 등에 비추어 장래 계약의 적정한 이행을 해칠 것이 명백하다고 보기도 어렵다.
⑧ 실제로 그 후 위 회생절차는 회생계획에 따른 성실한 변제 등으로 비교적 빠른 시일 내에 종결되어 향후 원고의 사업수행능력에 대한 신뢰도가 높아졌다고 볼 여지가 크다.
따라서 이 사건 처분은 공공기관법 제39조 제2항이 정한 요건에 부합하였다고 볼 수 없어 위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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